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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딥디크 롬브로단로 : 호기심 많고 짖궂은 숙녀의 손끝에 스며든 향기]

by 우연의 칼럼 2020. 11. 17.

누구나 좋아할법한 장미향이 있다.

그 공통점은 주로 부드럽고 파우더리하며 지극히 여성스러운 장미꽃 내음이 난다.

반면 딥디크의 장미향 계열 향수 중 하나인 롬브로단로는 후각에 따라 지극한 호불호가 나타날 것이다.

부드러운 장미꽃향 보다 쌉싸름하고 떫은 꽃잎 향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마치 손으로 장미나무에서 갓 피어난 싱싱한 잎사귀와 꽃잎을 짓이긴 듯한 향기 분자가 후신경을 자극한다.

이처럼 후신경이 무딘 사람조차 곧바로 후각의 시각화를 이룰수 있는 원인은 딥디크의 조향 기술이겠다.

딥디크 롬브로단로는 단일노트로 구성되어 모든향료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뒤섞여 발향하기 때문에
시향 즉시 강한 꽃잎사귀향을 맡을 수 있다.

노트구성 : 불가리안로즈, 카시스, 블랙커런트, 베르가못, 만다린오렌지, 엠버그리스, 머스크, 블랙커런트잎

(딥디크의 장미 계열인 오로즈는 노트층이 구분되어있고 좀 더 부드럽고 달콤한 장미향과 재라늄으로 구성된다)

대체 이 생소한 장미꽃 잎사귀향은 어떻게 구현하게 된것일까 상상해본다.

관심없는 대화가 흐르는 모임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몸이 찌뿌둥하던 숙녀가 창밖에 꽃이 만개한 장미 정원을 보고 홀린듯 조용히 일어나 나간다.

정원의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생기가 돌았는지
미소를 띄고 꽃에게 말하듯 중얼거리며 이슬이 맺혀있는 싱싱한 붉은 장미나무 가지를 꺾는다.

살랑이는 장미꽃향이 공기중에 퍼져오는데 오늘은 왠지 달콤한 꽃내음 보다 싱그러운 잎사귀의 초록색 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것 같다.

춘곤증에 빠진듯 몽롱해진 뇌를 자극하는 풋풋하고 쌉싸름한 꽃잎사귀향이 자꾸만 맡고 싶어진다.

그래서 손으로 장미 잎사귀와 꽃잎을 하나씩 따서 코에가져가도 보고, 곧 공기중으로 향이 날아가자 꽃과 잎사귀를 손바닥에 한움큼 쥐고 주먹을 지어 짖이겨 본다.

짖이겨진 잎사귀와 꽃잎을 보려 손을 펼쳐서 진해진 잎사귀향을 맡아본다.

보드라운 꽃잎은 손의 체온에 맞닿아 금새 검붉게 변색되어 수분이 날아가며 옅은 향기를 남기고, 매끄러운 광택이 돌던 초록색의 잎사귀는 조각으로 으깨어져
쌉싸름한 즙을 낸다.

한참을 그렇게 무상의 정원에 속해있던 숙녀는 시간이 흘렀음을 인식하고 다시 있던 곳으로 되돌아 간다.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좋아하고 다소 냉정해
보이던 그녀의 손끝에 스며든 쌉싸름한 꽃잎사귀 향을 어떤 누군가는 보았다.

그녀에게서 아이같이 호기심많고 짖궂은 모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

상상만으로 생소한 향의 구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미지수이다.

풍성하게 핀 장미꽃의 줄기와 잎에서 나오는 즙을 온전히 그대로 향료로 사용한 것 같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작열하는 뜨거운 여름 또는 회색빛이 감도는 겨울에
상쾌하고 싱그러운 꽃잎사귀 내음을 몸에 지녀보라.

움직이기 싫은 이 두 계절에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어 줄지도 모르니.